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는 해고 노동자의 범죄를 통해 현대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파헤칩니다. 유머와 비극이 교차하는 이 작품은 단순한 사회 드라마를 넘어 가족, 역사, 그리고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완벽해 보이던 일상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요? 이 영화는 그 질문 앞에 관객을 세웁니다.
노동과 가족: 제로섬 게임 속 인간의 선택
영화는 "사람은 넷, 자리는 하나"라는 제로섬적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주인공 만수는 태양 제지에서 25년간 근무하다 해고된 후, 파피루스라는 회사에 지원하지만 면접에서 탈락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보다 성적이 우수했던 법무와 시조를 잠재적 경쟁자로 인식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만수가 가상의 회사 레드 페퍼를 만들어 이들을 유인한다는 설정입니다. 레드 페퍼라는 이름은 선출을 죽이려다 들었던 고추 화분에서 따온 것으로, 애초부터 살의를 품고 만들어진 회사입니다.
이 범죄의 부조리함은 더욱 깊습니다. 법모와 시조는 실제로 파피루스에 합격했지만 그 사실도 모른 채 살해됩니다. 그들은 문재지의 자리를 원하지도 않았고, 그 자리는 선출이 죽기 전까지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만수는 미래의 가능성조차 차단하기 위해 불필요한 살인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는 현대 노동 시장의 극단적 경쟁 구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가족 서사 역시 노동 문제와 병행됩니다. 회사에서 "가족을 모집합니다"라는 표현을 쓰듯, 만수의 집에서도 구조조정이 일어납니다. 아내 미리는 두 마리의 개를 친정으로 보내며 "이 많은 식구를 다 먹여 살릴 수 없다"라고 선언합니다. 기업의 대량 해고와 가정의 구조조정이 동일한 논리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만수가 법 모를 관찰하며 그의 부부 관계에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는 장면들은 이 영화가 얼마나 섬세하게 노동과 가정의 문제를 교차시키는지 보여줍니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유지하려 발버둥치지만, 결국 그들이 대면하는 것은 자신의 무력함입니다. 이병헌이 연기한 만수의 코스프레 같은 수염 변화는 상징적입니다. 취업 상태일 때는 수염을 기르고, 해고 후에는 민 상태로 등장합니다. 이는 나무가 벌목되는 것처럼 노동자가 해고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은유한 것입니다. 관객은 그의 외형 변화만으로도 그가 처한 상황을 직감하게 됩니다.
낙원의 상실: 순환하는 비극의 구조
영화의 오프닝은 완벽한 낙원을 보여줍니다. 전원주택 마당에서 가족과 함께 장어를 구우며 "다 이루었다"라고 말하는 만수의 모습은 중산층의 이상적 삶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곧이어 디졸브로 연결되는 장면은 나무토막이 공장에서 펄프로 분쇄되는 과정입니다. 이 시각적 전환은 완벽해 보이던 가족이 곧 해체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아들이 "이게 뱀이냐"라고 묻자 "장어"라고 답하지만, 실제로 회사가 보낸 것은 해고 통지라는 '뱀'이었습니다.
만수의 집은 원래 아버지의 소유였습니다. 아버지는 베트남 참전 용사이자 돼지 농장 주인이었으나, 구제역으로 2만 마리의 돼지를 매립한 후 창고에서 자살했습니다. 만수는 9살 때부터 열 번이 넘게 이사를 다니며 고단한 삶을 살았고, 성공한 후에야 그 집을 되찾았습니다. 창고를 없애고 온실을 만든 것은 죽음의 흔적을 지우고 생명의 공간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그 온실 아래에는 여전히 비밀이 묻혀 있습니다.
세 번의 살인은 점차 본질을 드러내는 과정입니다. 법모를 죽일 때는 준노로 위장하고, 시조를 만날 때는 이름은 밝히지 않되 자신의 처지를 고백하며, 선출에게는 완전히 자신을 드러냅니다. 이는 점점 냉혹해지면서도 동시에 자기 정체성을 노출하는 모순된 과정입니다. 법무와 시조를 죽이는 것은 자신의 현재와 과거를 살해하는 것이고, 선출을 죽이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없애는 것처럼 보입니다. 선출은 섬에 혼자 살며 이혼한 아내에게 미련을 두고 있는 고독한 인물로, 이는 몇 년 후 만수의 모습과 겹칩니다.
영화의 결말은 표면적으로 해피엔딩입니다. 만수는 완전범죄에 성공하고, 집도 지키고, 문재지에 취직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다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의심하고, 아내는 남편의 범죄를 짐작하며, 만수 자신은 9년간의 금주를 깨뜨렸습니다. 딸은 첼로 연주를 들려주지만 아버지는 출근하고 없습니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감정적으로 배제된 상태입니다. 관객은 완벽히 복구된 것처럼 보이는 낙원이 실은 균열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무의 은유: 3대에 걸친 역사의 침묵
나무는 이 영화의 모든 층위를 관통하는 핵심 은유입니다. 제지업은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드는 산업이고, 만수의 코스프레 같은 수염은 취업과 해고에 따라 자라고 깎이는 나무입니다. 선출은 유튜브에서 "제지용 나무는 따로 심고 베는 무한 재생 사이클"이라고 설명하지만, 이는 노동자를 소모품처럼 순환시키는 시스템의 자기 합리화에 불과합니다. 아버지가 2만 마리의 돼지를 매립한 것과 기업의 대량 해고는 본질적으로 같은 과정입니다.
나무 밑에는 비밀이 묻혀 있습니다. 아들이 훔친 핸드폰, 아버지가 매립한 돼지, 만수가 살해한 시신들이 모두 나무 아래 땅속에 있습니다. 이는 3대에 걸친 범죄와 고통의 축적을 의미합니다. 할아버지는 베트남전에서 습득한 북한제 권총을 숨겼고, 만수는 그 권총으로 경쟁자들을 죽였으며, 아들은 핸드폰 절도를 저질렀습니다. 영화는 시조를 죽이는 장면과 아들이 핸드폰 대리점을 터는 장면을 교차 편집하며, 3대의 범죄를 한 축에 꿰어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만수는 제지롤을 나무 막대로 톡톡 두드립니다. 이는 더 이상 필요 없는 구시대의 관행이지만, 그는 여전히 그 행위를 반복합니다. 아라가 법모에게 "제지 기계에도 윤활유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듯이, 제지 기계는 아내를 은유합니다. 만수가 마지막까지 기계를 두드리는 것은 아내를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대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소등 시스템이라는 AI가 불을 하나씩 끄며 만수를 어둠 속에 잠기게 하는 라스트신은, 그 역시 곧 해고될 운명임을 암시합니다.
베트남 참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에서 시작된 이 가족의 비극은, 한국 사회가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 치른 대가를 상징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번영 아래에는 수많은 희생과 비밀이 묻혀 있습니다. 나무는 그 모든 것을 침묵 속에 품고 자라나지만, 언젠가는 다시 베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이 영화가 그려내는 순환의 구조입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제목은 반어적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만, 관객은 그것이 핑계이자 변명임을 깨닫게 됩니다. 만수의 선택은 극단적이지만, 그가 처한 구조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현실입니다. 이 작품은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힘을 지닙니다. 완벽하지 않고 흔들리며 실수하는 인간의 모습은 거울처럼 우리를 비춥니다. 박찬욱 감독은 유머와 비극, 사회 비판과 인간 탐구를 절묘하게 직조하며, 현대인의 불안과 욕망을 낙원의 상실이라는 보편적 서사로 승화시켰습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InaRMazLFHQ&t=165s